제목 : 사리암 가는 길
날짜 : 2014년 8월 3일
올 여름은 여러모로 바쁘다.
세월호 사건으로 시작된 정부조직개편이
내가 근무하는 곳도 영향권 내에 있어 앞으로 어떻게 조직이 개편될것인지 알 수 없지만
모든것이 관료 보다는 국민들 입장에서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모처럼 며칠간의 달콤한 휴식이 주어졌다.
태풍 영향은 남아 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운문사 사리암을 찾아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운문사에는 내원암, 북대암, 청신암, 사리암 등 4개의 암자가 있는데
그 중에서 사리암은 영험한 기도도량으로 불자의 발길이 연중 끊이지 않는 곳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운문사가 있어 사리암이 있고, 사리암 때문에 운문사를 찾는이가 더욱 많은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곳이다.
사리암은...
집에서 두어시간 달려야 갈 수있는 제법 먼 거리다.
태풍 나크리 영향으로 거세게 쏫아지는 빗방울이 창밖 풍경을 지워버렸다.
운문령...
내가 좋아하는 영남알프스의 관문이다.
굵고 거센 비를 와이퍼로 훔쳐내며 두텁고 짙은 안갯길을 느릿느릿 더듬어 올라선다.
사리암주차장에 도착하니 거센 빗줄기가 어느정도 잦아들었다.
인근 운문계곡에는...
상류로부터 힘차게 흘러내리는 물줄가 강한 비트의 음악처럼 전율을 느낄만큼 엄청난 수량을 토해낸다.
포장길이 끝나고.... 드디어 계단이 시작된다.
크고작은 돌들로 들쭉날쭉 자연스런 조화를 이루는 108계단이 불자들이 오르기 편하도록 적당한 구비를 만들어놓았다.
한계단 한계단 오를때마다
목덜미에 땀이차고 숨은 거칠어지지만...
청량감있는 산속 깨끗한 공기는 정신을 한결 맑게 해준다.
돌계단을 오르다 맑은 물이 흐르는 약수터를 만났다.
소원성취라고 적혀있는 이곳은 적당히 땀을 흘린 불자님들 갈증 해소에 제격이다.
어느정도 올랐을까?
계단 위 저 멀리 드리워진 나뭇가지 너머로 살짝 드러나 보이는 전각이 이제 다 올라왔음을 말해준다.
이곳 사리암 관음전에는 불상이 없다.
대신... 관음전 창 너머에는 천태각에 나반존자가 모셔져 있다.
그래서 사리굴에서 기도를 올리는 불자님이나, 관음전에서 예불을 올리는 스님들도 "나반존자, 나반존자"를 반복한다.
그윽한 스님들의 불경을 들으며 사리굴에서 108배를 올렸다.
108배 후에는 방석을 펴고 아침 예불이 끝날때까지 조용히 눈을 감고 좌정을 한다.
사리굴위에서 떨어지는 빗소리와 관음전에서 들려오는 불경은 그야말로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마음을 풀어 준다.
예불이 끝나고...
장독대너머 운문산 자락이 보이는 요사채 툇마루에 앉아 한동안 머물렸다.
불수록 듬직한 운문산, 그리고 억산... 비를 머금은 실구름이 산자락 곳곳에 피어오르는 풍경은 그야말로 선경이다.
사리암을 내려와 운문사에 도착..
아침까지 쏟아지던 세찬 폭우는 걷히고 담쟁이 위로 마른 햇살이 환하게 쏟아지고 있다.
길가 나지막한 담쟁은 산사의 안과 밖을 운치있게 나누어준다.
너무 드러나지도 그렇다고 삼엄하게 보이지않는 그 나지막함이 참 보기 좋다.
운문사에는 주불전이 두채가 있다.
대웅보전은 조선 숙종때 중창된 건물로 이전에는 비로전이라 불렸다.
1994년에 새로 신축한 건물이 만세루 앞의 대웅보전이다.
절집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면 대웅보전이라고 하고,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면 대적광전, 혹은 비로전이라고 한다.
조용한 법당 문을 열고 들어선다.
비로자나불 불상 주위 옥색이 도는 푸른빛 단청은 신비하고 단아하게 다가온다.
이곳 운문사에는 국내 최대의 비구니 도량답게 소박하고곳곳에 흐트러짐 하나 없는 단아함이 배어있다.
이 담장에 쓰인 돌 역시 스님들이 한 장 한 장 나르고 다듬은 것일것이다.
아름다운 운문사...
아직 빗기운이 가시지 않은 구름에 간간히 비치는 햇살은...
경내 뜨락에 온온하게 퍼지고, 그 햇살이 닿는 곳곳에 존재해있던 모든것들이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운문사 경내를 벗어날쯤
언제가 읽었던... 산중암자 저자 정찬주 교수님 글이 문득 떠오른다.
산중암자에 가면 시인이 되는것 같다.
감성이 풋풋해지고
젊은 시절처럼 정신의 날이 선다.
메마른 가슴이 촉촉해지고,
눈에 보이는 것이 다 꽃으로 보인다.
귀로 듣는것이 다 노래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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